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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속리산 법주사의 문화재 (3)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9/02/22 [10:05]

 문화재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보물 제1417호)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 법주사 (사내리)

 

속리산 법주사는 금강문을 시작으로 천왕문, 팔상전, 쌍사자 석등, 사천왕 석등, 그리고 대웅보전까지 직선상에 놓여있고, 중심부 일대에 각종 건물이 순환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를 고리형 가람 배치형이라 한다. 이러한 배치를 가진 사찰은 선암사, 개심사, 관룡사. 화엄사. 용문사, 송광사 등 전국 사찰 중 7개 사찰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법주사는 대웅전 주변이 계단이 없는 평평한 마당이기 때문이다.

 

▲ 쌍사자석등    



팔상전을 지나니 앞에 사자 두 마리가 등을 들고 있다. 다시 앞에 사천왕 석등이 있다. 한 선상에 2기의 석등이 있는 것은 법주사에서만 볼 수 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배를 마주 보고 석등을 들고 있는 모습은 법주사 외에도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 제103호)과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보물 제353호)이 있다. 이와 유사한 쌍사자 석등은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보물 제282호)과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보물 제389호)도 있다.


사찰에서의 석등은 일반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인 법을 표현한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등지인연경(燈指因緣經)>에 의하면 “불타(佛陀)의 진리인 광명은 암흑과도 같은 사바세계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불신(佛身)의 광명이 비치는 등명(燈明)으로 촌각도 지체 없이 선(善)한 경지로 인도하는 선봉이 된다.”고 하였다. 석등은 부처님 말씀인 진리의 빛으로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 인간의 어리석음을 없애주는 법을 구체적인 상징적 조형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진리의 등불 또는 법신(法身)이라 표현한다. 석등은 등화(燈火)를 밝힐 수 있는 실용적 의미와 함께 등 공양의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 쌍사자석등    



석등에 나오는 사자를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에 “흡사 가정에서 기르는 금빛을 지닌 삽살개처럼 생겼다. 여러 짐승이 이를 보면 무서워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가. 기가 질리기 때문이다.”하고 사자에 대해 표현을 했다. 사자는 절대적인 힘과 위엄을 갖춘 동물로 생각했다. 원래 사자를 사자 ‘산(?)’자에 사자 ‘예(猊)’자를 써서 ‘산예(?猊)’라고 불렀다. 猊는 부처가 앉는 자리나 고승이 앉는 자리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사자를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영물로 보고 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다. 빛을 소중히 모신다는 의미이다. 사자 한 마리는 입을 벌려 ‘아(阿)’ 소리를 내고 또 한 마리는 입을 다물어 ‘흠(欠)’ 소리를 내고 있다. 두 소리가 합쳐야 비로소 완성된 소리가 된다.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 영혼과 완성, 성취를 뜻하는 ‘옴’이 된다.


석등의 높이는 3m 정도이고,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두 팔과 입으로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간주석 대신 두 사자기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간주석은 팔각의 석기둥으로 이루어지고 그 위에 화창석과 지붕돌이 올려 지면 석등으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사자 한 마리가 무거운 화창석과 지붕돌을 받쳐 든 것을 보는 우리는 무거울 것이라는 감정을 먼저 가지게 되지만, 두 마리가 함께 받치고 있다면 그만큼 무게감을 느끼는 감정을 덜 가지게 될 것이다. 석공은 쌍사자를 정과 망치로 다듬어 가는 동안 드러나는 사자의 골격과 근육이 화창을 들 만한 힘을 가진 사지를 완성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결과는 석공의 팔 힘과 이마에 흘러내린 땀, 그리고 영혼이 합쳐진 것이 아닌가 한다.

 

▲ 쌍사자석등    



팔각의 기단을 밟고 서 있는 뒷다리의 근육에서 힘이 보인다. 잘록한 허리와 탱탱한 엉덩이의 뒤태는 근력과 S라인을 강조하여 부드러움을 읽을 수 있다. 잘려나간 꼬리는 그 크기를 알 수 없지만, 사자의 용맹함과 부드러운 곡선을 보아서 머리까지 이르지 않을까 한다. 비록 힘들게 화창을 들고 있으나 사자의 전체적인 자세는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쌍사자 이상 화사석까지 받치고 있는 팔각의 하대석은 각 면을 사각형으로 깊게 파고 각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다. 그 위쪽의 안쪽으로 2층의 팔각 받침석을 새겼다. 사자가 밟고 있는 기단석은 팔각으로 복련을 각 면에 가득 채워 돋을새김 하였고, 연잎 가운데에 화문을 새겼다. 연화받침은 물속에 있는 탁한 진흙과 같은 세상을 뜻한다.


사자가 들고 있는 위받침돌에는 2단의 받침석을 두고 위쪽에 위로 향한 연꽃무늬(앙련)를 이중으로 장식하였다. 연화대는 광명, 청정, 부처, 보살의 세계를 상징한다. 두 마리의 사자는 각각의 다리에 3개씩의 발가락이 닿지 않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 화사석은 8각으로 네 곳에 장방형 화창을 냈는데, 다른 석등에 비해 크다. 화창 주위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은 다른 사실이 있었던 듯하다. 화사부는 불타의 꺼지지 않는 자비 광명을 상징하고, 부처의 진리가 두루 화창으로 퍼져 무명의 두려움을 밝히는 창구이다. 지붕돌은 크고 8각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나 추녀 끝이 약간 반전되었으며, 정상에는 복련을 조각하였다. 지붕 위에는 둥근 공 모양의 보주가 남아 있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 사천왕석등    



대웅보전 앞 사천왕 석등은 4장의 평평한 돌로 조립된 방형 바닥 돌 위에 서 있다. 전체적으로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한 석등이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을 올렸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아래 받침돌 각 면에는 연꽃을 측면에서 본 측 연화문을 오목 새겼다. 윗단은 너비가 아랫단보다 줄어들었는데, 아랫부분에는 2단의 각진 층급을 너비를 조금씩 줄여 새겨 놓았고, 윗부분에도 3단의 각진 층급이 역시 너비가 줄어든 채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부분에는 1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해 있는 복련(覆蓮)의 연꽃무늬를 면마다 1개씩 모두 8개를 돋을새김 하였다. 가운데 받침돌 중앙에서 팔각의 간주를 세우고 위 받침돌은 아래 받침돌의 윗단을 거꾸로 대칭 하여 올려놓은 모습이다. 아랫부분과 윗부분에는 각각 너비를 줄인 3단과 2단의 층급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부분에는 1장의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무늬 8개가 면마다 1개씩 돋을새김 되어 있다.

 

 

▲ 사천왕석등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 하였다.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은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었는데, 특히 두껍게 돋을새김 되었기 때문에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부조로 장식된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은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서쪽을 방어하는 광목천왕,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이 악귀를 발로 밟고 손에는 각각의 지물을 들고 투고와 갑옷을 착용한 모습이다. 지붕돌은 처마가 두껍지 않아 날렵한 느낌을 준다.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이 있고, 여덟 곳의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단면이 둥근 2단의 받침이 있고, 그 위에 상륜부로 둥근 보주가 얹혀 있지만, 후대에 새로운 돌로 만들지 않았나한다.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보다 조금 일찍 조성된 것으로,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의 8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 석조희견보살입상    



원통전 서쪽에 사모각 내에 큰 독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의 석조물이 있는데, 이것이 법화경의 약왕보살의 전생담에 등장하는 희견보살입상이다. 석조희견보살입상은 원래 팔상전 좌측에서 용화보전 자리를 바라보며 석연치, 사천왕 석등과 함께 차례로 배치되어 불전에 정수, 등, 향을 공양하는 의미를 띠었으나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전체 높이 213㎝의 등신대 크기로서 하나의 돌로 제작되었으며, 발형의 향로와 지대석은 따로 만들어졌다. 현재 얼굴과 대좌 일부는 없어졌고 손과 발도 보수된 흔적이 확인된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사각 대좌에 올려진 향로를 받쳐 들고 방형 받침돌 위에 서 있는데 당당한 자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큰 눈과 곱슬머리 형태, 하체에 짧은 바지를 입는 옷 등이 일반적인 보살상의 모습과 달라 단순히 향로공양상으로 부르기도 하고 머리 위에 든 물체를 향로가 아닌 발우나 다기(茶器)로 인식하여 각각 가섭봉발가사상(加葉奉鉢袈裟像), 차공양자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 석조희견보살입상    



신체보다 머리가 크고 좁은 어깨, 짧은 상반신, 잘록한 허리, 튼튼한 다리가 특징이며, 전체적으로 몸의 양감이 풍부하다. 얼굴이 파손되어 원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그 밖의 부분은 비교적 양호하다. 양어깨 위로 천의를 둘렀는데 몸의 앞쪽의 옆선을 따라 대좌까지 내려오고 하반신에는 허리띠를 착용하였으며 그 아래로 무릎까지 오는 짧은 바지를 입었고 발에는 천의를 덮지 않고 맨발로 표현되었다. 등 쪽의 천의는 U자 모양의 반원을 그리며 양어깨에 걸쳐있고 허리 아래쪽의 겉치마는 긴 항아리 모양으로 아래쪽에는 U자 모양의 주름이 선으로 표현되었다. 허리 아래는 옆으로 3개의 선으로 표현하였고, 바로 아래쪽에는 V자 모양이 좌우로 나누어져 3개가 차례로 선으로 표현되었다. 발아래 밟고 있는 받침돌과 지대석은 별도로 돌로 이루어졌으며, 지대석은 구름의 형상을 하고 있다. 향로를 받침대의 네 면에는 얕은 사각의 안상을 새겼고 향로의 표면에는 연꽃잎을 새겨 장식하였다. 특히 향로를 받쳐 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 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에 나타난 천의의 표현기법은 절묘하다.


지대석 위에 비교적 큰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흔치 않은 조각상으로 신체비례와 약간 딱딱한 몸의 표현, 간결한 세부묘사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 불교 조각으로 경내의 쌍사자 석등을 제작한 작가와 동일한 작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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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2 [10:05]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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