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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한제국 때까지 우리 땅 만주, 왜 포기하나?
대한제국,이범윤 북변간도관리사로 임명해 북간도 관리
 
박정학 (사)한배달 이사장 기사입력  2019/10/12 [05:50]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못 박고 있다.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자기 역사영토 포기 행위다. 대한제국 시절 북간도 관찰사를 임명하기까지 했고, 임시정부 시절 우리 선조들이 광복투쟁을 벌였던 현장인 간도 지역, 만주 땅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헌법에까지 넣어서 명확하게 버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스운 나라다.

  

▲ 간도학회가 주장하는 간도 지역도    

 

“일본이 청나라에 줬다는 간도는 당시에 누구 땅이었을까?”

 

우리나라 모든 역사교과서에는 ‘1909년 간도협약에 따라 일본이 만주철도 부설권과 탄광 개발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줬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 그 간도가 누구 땅이었기에 일본이 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간도는 어디인가?


아쉽게도 우리 교과서에서는 그것을 풀 수 있는 내용이 없다. 간도학회가 밝혀놓은 간도의 위치는 <그림1>에서 보듯이 교과서의 고조선-고구리-발해의 땅이었던 만주지역 전체를 포괄한다. 최근 인하대학교 고조선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 때까지도 요하로부터 두만강 700리 북쪽의 선춘령까지 우리 영토였다고 밝혀졌다

 

그뿐 아니라, 대한제국 시절까지 북간도 관찰사를 임명한 기록이 있고, 요즘 영화화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봉오동 전투 및 청산리 대첩 지역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시절 우리 선조들이 광복투쟁을 벌이던 기지가 있던 곳이 만주-연해주 지역이다. 과연 남의 나라 땅에서 그렇게 준비하여 전투까지 벌일 수 있었을까?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1909년 일본이 청나라에 준 간도는 만주지역이고, 그곳은 신시시대부터 대한제국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으므로,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이 청나라에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민족재통일을 했다는 고려 이후 우리 영토는 한반도로 제한하였고, 일부 교과서에 백두산 북쪽에 서간도, 북간도라고만 표시하고 있을 뿐 전체 크기는 그리지 않았으며, 대부분 교과서에는 간도가 어디라고 표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반도사관’을 철저히 추종하는 모습이다.

 

간도는 신시시대부터 조상들이 살았던 ‘신시문화권’

 

간도가 만주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 속의 영역과 맞아떨어지므로 이해하기 쉽다.
교과서에서 고조선-고구리-발해까지의 영토가 만주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역사는 우리 교과서는 구석기-신석기 시대라고 하여 정착생활을 하지 않았으므로 영역을 표시할 수 없는 원시시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학과 역사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인류사회 발전 단계설에 따르면 무리사회를 거쳐 정착생활을 한 신석기 시대에는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마을사회를 형성했고, 더 커진 마을연맹체 사회인 고을나라로 발전되었다. 그 내용이 『삼국유사』의 환국(마을사회), 신시(고을나라) 시대다. 지금 우리나라 교과서는 『삼국유사』보다 더 뒤떨어진, 아니 일본이 만들어놓은 대로 신화라고 일컫는 고조선은 물론 그 이전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곳을 모르게 하려는 역사인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라 안타깝다.

 

▲ 마린스까야 문화의 토기와 석   

▲ 말르이쉐보 문화의 흙으로 만든 곰    

▲ 말르이쉐보 문화의 움집과 암사동 움집    


환국과 신시 시대 문명의 흔적에 대해 최근 김종서 박사의 ‘신시문화권’설은 대단한 연구다. 그는 요하문명 지역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오래된 ‘흑룡강(아무르강) 문명’ 지역에서 13,000년 전부터 정착생활을 한 오시뽀프 문화(서기전 11,000~서기전 9,000년), 마린스까야문화(서기전 7,000~서기전 5,000년), 말르이쉐보 문화(서기전 6,000년) 등에서 마을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문화가 말갈 이전의 숙신-읍루-물길의 문화인데, 그들이 고구려와 부여에 속했던 부족국가였고, 혈통적으로 90%이상 고구리ㆍ백제 계통이라는 것을 밝혔으며, 거기서 나온 세석기, 구슬옥, 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움집 등의 유물과 유적들이 한반도와 요하지역의 것과 같은 유형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신시문화권’이라고 명명했다.

 

▲  김종서 박사가 주장하는 신시 문화권  


또한 요하문명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도 신시 및 고조선 시대의 사람들이었으며, 거기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들도 한반도의 우리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놓았다. 이런 업적은 학술적으로 매우 귀중한 데도 우리 정부와 학계에서 더 깊이 파고 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그림4>).

 

▲ 요하 유역과 한반도의 빗살무늬 토기 비교(완전 닮은 꼴) 

 

이와 함께 한사군의 위치도 거리를 따지는 기법을 발견하여 영정하 동쪽이라고 찾아놓았다.

 

▲ 김종서가 밝힌 한사군 위치도     

 

고려 이후 반도로 축소했으나 광복 투쟁은 그 북쪽에서 전개

 

그러나 우리 교과서에서는 고려 때부터, 신시를 빼고도 고조선-고구리-발해로 이어지는 3,258년 간 같은 겨레였던 발해의 후손들을 이민족이라면서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그들이 세운 요ㆍ금ㆍ원ㆍ청은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영토는 압록강 두만강 선을 넘지 못한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에서 그것이 아님을 밝혔다. 이들은 중국과 우리나라 역사 기록들을 비교 분석하여, 최소한 고려에서 조선 초ㆍ중기까지의 서쪽 국경선은 당시에 압록강(鴨綠江)이라 부르던 현재의 요하였으며, 따라서 고구려 때부터의 고대 평양도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 현 중국 요녕성 요양지역이며, 그 인근에 서희가 취득한 강동6주도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윤관이 개척한 9성도 교과서에서 적시한 한반도 안이 아니라 고려사 기록에 나오는 대로 두만강 북쪽 700리, 현 흑룡강 성 지역이라는 것도 밝혔다. 앞으로 우리 교과서가 크게 바꿔야 할 부분이다.

 

▲ 만주지역 소유권 변화도(간도학회 주장의 타당성 증명됨)    


더 확실한 이유는 바로 광복군들의 광복투쟁이 압록ㆍ두만강 북쪽 중국과 연해주 지역에서 벌어졌다는 데 있다.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청나라, 명나라와 국경분쟁이 있었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한제국에서는 1900년대 초에  이범윤을 북변간도관리사(北邊間島管理使)로 임명하여 북간도 지역 주민들을 관리했으며, 그는 그 후 지금의 연해주 지역에서 안중근 등의 단지동맹 체결과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 양성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이 지역 일대에서 대한국민회와 의군부 등의 독립투쟁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1920년에는 유명한 독립전쟁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도 이 지역에서 있었다(<그림5> 참조).


만약, 이 지역이 우리나라 영토가 아니고 청나라나 러시아 땅이었다면 이런 활동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우리 광복투사들이 그렇게 마음 놓고 투쟁할 수 있었을 것인가? 최소한 그들은 그곳이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1909년 일본이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었으니 당연히 당시의 ‘간도’는 우리 영토였으며, 앞에서 본 대로 신시시대 이후 그때까지 줄곧 우리 영토였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증명되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무효화된 간도협약, 왜 우리만 지키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처음으로 약속한 1943년 11월 27일, 미ㆍ영ㆍ중 삼국의 카이로 선언에서 국제법적으로 ‘폭력과 강압으로 맺은 이권과 특권은 무효’라고 했으므로 한일 간의 1905년 이후의 여러 협약도 무효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2차 대전 후 일제가 패하면서 1952년 4월 28일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에서 “중ㆍ일 양국은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체결한 모든 조약ㆍ협약 및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했다. 또 10조에서 1910년의 한일 병합조약 등 모든 협약이 무효라고 명기했다. 따라서 1909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이므로 중국이 우리나라에 돌려주어야 한다. 1965년 한일협약 제2조에서도 1910년 이전 조약이 무효라고 하여 을사조약 자체가 국제법적 효력이 없으므로 우리를 대신해서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도 무효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런 내용을 잘 아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5년 10월, 국회에서 ‘간도협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라고 증언해놓고도 우리 정부차원에서 중국에 ‘간도협약이 무효이므로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국제분쟁지역이 되려면 일단 정부차원의 선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우리 땅이었고, 국제법적으로도 명확히 우리 땅인 간도지역을 왜, 반환하라는 요구조차 하지 않는가? 이는 명확한 주권의 포기이며, 민족 반역 행위다.


21세기 민족 재도약을 위해서는 이런 당연한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 지금은 대중화 시대이므로 인터넷과 SNS 등으로 결집되는 대중의 힘이 대단히 크다. 민족의 재도약을 위해 모든 국민들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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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2 [05:50]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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